[시론] 우크라이나 사태와 북한 미사일 발사
북한의 2021년은 혹독했다. 2022년은 더할 수 있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먼저 우크라이나 사태는 북한에 두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 병력을 배치하며 미국에 대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와 러시아 인접국에서 나토 활동 중지를 요구했다. 이를 단호히 거절한 미국은 러시아가 침공하면 강력히 보복하겠다고 한다. 이런 눈앞의 분명한 위협으로도 미국을 굴복시키지 못하는데, 미사일 위협으로 미국의 양보를 얻을 수 있을까.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를 선결 조건으로 걸고 수 개월간 바이든 행정부의 대화 제의를 거부해 온 북한은 이제 미국이 자신들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을 깨달아야 한다. 또 하나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쏠린 세계의 이목이다. 러시아가 실제 침공하거나, 중국이 대만에 대한 행동(전면적 침공은 아니더라도)에 나서 러시아와 함께 미국에 맞선다면 워싱턴이든 모스크바든 한반도에 관심을 두진 못할 것이다. 북한 지도부는 비효율적 경제 체제와 흉작, 제재, 특히 코로나 국경 봉쇄로 내내 전전긍긍했지만, 지난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는 결국 경제 통제 강화로의 회귀였다. 수렁에서 벗어날 근본적인 경제 개혁과 무역 재개는 외면했다. 경제 개혁은 정치적으로 불쾌한 주제이고, 무역은 코로나 확산의 두려움을 키운다. 절대적인 이념적 충성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경제 개혁을 얘기할 간부는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왜 미사일을 쏘아대는 걸까. 전원회의에서 언급한 ‘불안정해지는 조선 반도’ 상황으로 국가 방위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유가 아닐 것이다. 한반도 상황은 1년 전보다 악화하지 않았고, 북한이 정말 상황을 염려했다면 무기 실험 외에 한국 정부가 제안한 종전 선언을 놓고 대가를 협상하고, 국제사회에 북·중 동맹을 부각하며 고위급 회담 등을 추진했어야 했다. 하지만 북한은 하지 않았다. 물론 무기 실험으로 얻는 군사적 이익도, 우크라이나 사태 속에 북한이 잊히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한 득도 있긴 하다. 불확실성 속에서 미사일 실험은 안전한 선택지다. 간부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미사일 실험 안을 내면 비판받을 가능성이 작다는 것을 안다. 극초음속미사일 발사 뒤인 지난 10일 유엔 안보리에서 5개국 성명이 나왔는데, 북한엔 누가 서명하지 않았는지가 중요했다. 브라질과 인도는 물론, 친서방국인 케냐·노르웨이도 동참하지 않았다. 상임이사국인 미국·영국·프랑스는 대북 추가 제재 동의는커녕, 북한을 비난하는 서명도 못 받아냈다. 북한은 이로써 국제사회는 대북제재를 강화할 의지가 없음을, 중국의 레드 라인을 넘지 않는 선에서 맘껏 무기 실험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문제를 해결할 정책은 피하고, 안전하지만 비효율적인 정책을 택하는 것. 지난 19일 노동당 정치국회의에서도 이어진 패턴이다. 김일성 탄생 110주년 및 김정일 탄생 80주년 기념행사 같은 주제에 집중한 듯하다. ‘잠정 중지한 활동들의 재가동 검토’ 위협도 같은 맥락이다. 2020년 1월에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비슷한 발언을 했지만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실제 핵실험, ICBM 발사는 완전히 다른 문제로 북한이 이른 시기, 특히 베이징 겨울올림픽까진 선을 넘을 것 같진 않다) 심각한 경제·외교적 문제에 직면한 북한은 엔진과 조종장치가 고장 난 비행기 상태로 2022년을 맞았다. 재난 영화의 흔한 장면인데, 이런 영화에서 해피 엔딩은 드물다. 존 에버라드 /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시론 북한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사태 우크라이나 국경 미사일 위협